Search Results for '생활이야기'


47 POSTS

  1. 2009/10/16 어느 오후의 감상 by 함장 (6)
  2. 2009/07/19 10개월 만에 취업했습니다. - 가난과 직업에 대한 편견타파 by 함장 (38)
  3. 2009/02/13 대리운전을 시작하시려는 분들께 by 함장 (26)
  4. 2008/12/24 살아있습니다. by 함장 (32)
  5. 2008/08/11 Tistory 쫑파티 후기 by 함장 (16)
  6. 2008/06/02 영진공 광고 by 함장
  7. 2008/05/06 어버이날 단상 by 함장 (12)
  8. 2008/05/01 맥북 블랙 팝니다 (판매완료) by 함장 (10)
  9. 2008/04/07 히어로즈(미드) 보신 분? - 근황 by 함장 (16)
  10. 2007/11/20 위협받은 결정에 대한 책임 - 루소의 '참회록'을 읽고 by 함장 (10)
  11. 2007/11/11 인적자원관리 '비영리단체의 경영' 요약 PPT by 함장
  12. 2007/11/05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 ‘내 생애 단 한번’을 읽고 by 함장 (3)
  13. 2007/10/30 Apple Inc.와 포드주의(Fordism) by 함장 (4)
  14. 2007/10/16 가을이 깊어지는 지금 by 함장 (14)
  15. 2007/10/04 이제 슬 준비를 해야할 때 by 함장 (14)
  16. 2007/08/24 공원 풍경 by 함장 (11)
  17. 2007/08/16 우려하던 대로 텍스트큐브가 나왔습니다. by 함장 (41)
  18. 2007/08/10 사람을 싫어한다는 거 by 함장 (23)
  19. 2007/07/17 하드코어 한 주 by 함장 (6)
  20. 2007/07/16 인연이라는 것 by 함장 (19)
  21. 2007/07/11 남산 바이크 번개장소 by 함장 (12)
  22. 2007/06/26 그린애플! 쌩유붸리캄솨염! by 함장 (32)
  23. 2007/06/19 그냥 그런 이야기 by 함장 (8)
  24. 2007/06/18 복장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by 함장 (2)
  25. 2007/06/11 미디어 작문을 끝내며 by 함장 (2)
  26. 2007/05/28 다이어트는 운동과 함께 by 함장 (14)
  27. 2007/05/16 미치도록 달려서 온 지난 몇 달. by 함장 (23)
  28. 2007/05/14 내가 좋아하는 여성은... by 함장 (13)
  29. 2007/05/07 식상한 5월 - 가족의 해체에 대하여 by 함장 (4)
  30. 2007/05/01 노동절을 노동절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 by 함장 (22)

어느 오후의 감상

회사에 청소 일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가끔 아주머니가 일하시는 뒷모습을 볼 때면 눈시울이 붉어지곤한다.


죽을 때까지 죽지 못해 따라오는 노동의 굴레. 더군다나 생산수단에서 철저히 소외된 도시인의 노동 굴레.


현재 나는 내 수입의 25%를 부모님께 드리고, 15%는 내 서울에서의 필수 생활비(식사와 교통 정도), 10% 정도는 문화생활비(지인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소셜 생활비)로 쓰며 25%정도가 집세와 보험료, 인터넷 공과금 등으로 나간다.


25% 정도가 저축 가능한 금액이나 이 또한 빚 이자에 몇 달마다 한 번씩 터지는 예상치 못한 지출에 써버리면 돈을 모으기가 여간 쉽지 않다.


언론에서 4년제 대졸 - 그것도 in 서울 - 정규직이 받는 ‘평균 연봉’에 대해서 씨부릴 때마다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내 어머니에게 한 달에 몇 만원을 더 보낸다고 내 부모님의 삶이 나아질까?


회사에서 청소 일을 하시는 아주머니의 뒷 모습에서 내 어머니를 느낀다. 과연 내 어머니는 내가 보내드리는 그 얼토당토 안 되는. 내 서울 거주 및 생활비의 절반을 가지고 부모님 두 분이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화생활을 포기하고 10%를 더 드릴까? 그만큼 이 복잡하고 괴물 같은 도시에서 뒤쳐지면 결국 더 수입이 줄어들어 나 뿐만 아니라 다시 부모님까지 옥죄지는 않을까?


돈이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지만.


나는 심지어 이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시기를 지나 매월 조금씩 모을 수 있는 시기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우리 부모님의 생활 걱정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아마, 이런 비극은 내 세대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회사 아주머니의 뒷모습에 내 어머니를 투영하는 것이고, 내 노년을 투영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슬픈 것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악착같이 살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멍하니 앉아 세상에 당하지도 말아야겠다.

Posted by 함장

2009/10/16 14:30 2009/10/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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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혹은 모르시는 바와 같이.

장장 10개월의 구직기간, 8개월의 대리운전 생활을 거치고 취업을 했습니다.

고생이랄 것도 전혀 없는 기간이었으며, 확실히 제 지난 14년 삶 중에 가장 안 바쁘고 여우로우며, 스트레스 또한 거의 없는 한 때였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아르바이트를 대체하는 허울 좋은 단어가 생겨난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습니다. 노동 착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자본에 대한 두려움조차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기만 합니다.

14년 전,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공군기술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담임부터 시작해서 3학년 담임 모두 뜯어 말렸습니다만. 고등학교 3년 학비나 생활비가 들지 않고, 공군 기술 하사관으로 갈 수 있으니 미래도 결정되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이런 머리가 당시의 제 머리에서 나왔을 리 없습니다. 육군 전차부대 하사관을 지내신 제 아버지의 선택이었습니다. 전역하지만 않으셨다면 당시보다 훨씬 '잘' 살 수 있으셨기에. 자식들에게는 그런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선택을 자식에게 부탁하셨던 겁니다.

결국은 교장선생님의 허가 도장까지 받아낸 공군기술고등학교 지원서를 찢어버린 것은 제 손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제가 무엇이 될지 몰랐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랐으며, 제 미래를 그렇게 1달여의 고민으로 결정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제가 선택한 인문계 진학은 예상대로 어려운 생활이 되었습니다. 집을 떠나와 시작한 독서실 자취 생활은 '먹고 살기' 위해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절감케 하는 하루 하루였습니다. 당시 시급 1,700원으로 모은 한달 알바비 십몇만원은 독서실비 5만원과 아침, 점심으로 먹는 캡틴 매운탕, 크림빵, 우유 값으로 대부분 들어갔으니까요. 그나마 그 어린 마음에도 '호프' 집에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 물론 요즘은 미성년이 일하긴 불가능합니다만 당시 사회 통념상 불문율로 허용 되었고, 제 얼굴이 이미 그 당시엔 지금과 맞먹;;; - 의지로 더 많이 돈 벌 수 있는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옷은 칼같이 세탁해서 좋은 옷은 못 입혀도 늘 단정하게 입히셨습니다. 어디가서 가난한 집 아들이라고 욕 안 먹게 하시려고 늘 깨끗하게 씻기시고, 옷이라도 깔끔하게 입혀야 한다는 의지셨더랬지요. 그래서 비록 고등학교 3년 동안 혼자 살면서도 교복은 세 벌을 물려받아 한 벌을 이틀동안 입고 빨면서 깔끔을 떨었습니다. 덕분에 한창 땀 흘리며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해야 할 나이였음에도 교복 입은 채로는 땀 내는 일을 잘 안 했습니다. 더군다나 하루에 두 끼니를 컵라면에 빵우유로 때우는 제게 일터에서 땀내는 것 외에 다른 쪽 소모는 허기만 지울 뿐이었습니다. 한창 먹을 나이였으니까요.

뭐 대충 이런 전략이 잘 먹혔는지 제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다들 제가 그토록 가난한 환경에서 공부한 걸 모르고 계셨습니다. 요즘 와서야 술 마시며 옛날 얘기하다가 이런 얘길 하면 '그렇게 가난했었나?' 하시면서 그 때 못 도와주신 걸 아쉬워 합니다만, 저야 선생님들 도움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덕분에 이렇게 선생님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IMF는 저를 또 다시 '군대의 길'로 이끕니다. 경기가 안 좋다고 개나 소나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거랑 똑같은 것이죠. 성적이 좋아도 서울에 방은 커녕, 학비도 댈 수 없는 상황에서 사관학교 지원은 당연한 선택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로소 '체념'이란 걸 배웠습니다. 뭐든 안 되면 들이대면서 부러질 때까지 싸우던 제가 드디어 자본에 굴복한 첫 경험이었습니다.

나중에 배워서 안 것이지만 전 당시에 '인지부조화' 과정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 해군사관학교를 선택하면 90% 이상이 평생 해군 일을 합니다 - 길에서 그나마 '잠수함 함장'이란 꿈을 만들고, 그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라 스스로 주지시키며 맞대응 한 것이죠.

그래도 마지막 반항(?)은 했습니다. 이미 IMF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사관학교에 진학해 생도 과정을 밟던 형과 울고 불며 말싸움을 하며 가족들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내가 지금 젤 싫은 게 뭔지 알아? 사관학교를 가야 한다는 거야!" 하면서 철부지 고3 티를 낸 것이죠.

지금도 가끔 그 때 왜 웃으면서 가족들에게 잘 된 거라고 하지 못 했을까라고 돌이켜봅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남자들 군대 가기 싫은 거랑 똑같은 거죠 뭐.

사관학교에서 2학년 때 자퇴를 결심하면서 그 때 제 삶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최소한 부모님과 내가 먹고 사는 것만 유지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한다."

군생활은 선배들과 후배들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잘했음에도 그 자체가 갖는 구조적 열악함을 이해하면서 제가 노닐 물이 아니라는 게 확신이 섰기에. 더 치열하더라도 즐겁게 하고픈 일을 해보자며 뛰쳐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착각하는 데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일'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덤벼들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시스템과 그저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여야하는 '폐쇄적 구조'의 사회는 분명 다른 겁니다.

저는 사관학교를 나온 이후에도 제가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지, 제 '목표'가 무엇인지 정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어떤 걸 하면 특출나게 잘 할지' 모른다는 것과 같으니까요. 고졸 학력으로 3개월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함께 일한 직원들이 일 잘한다고 인정해주고, 퇴사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주어도 '고졸은 고졸일 뿐'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벽이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세상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졸, 심지어 중졸로도 세상엔 뛰어난 일을 해낸 제 또래(?)가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히스토리에 감춰진 '가진 자본력의 차이'는 그리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열정이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그 꿈을 향해 '굶어가며' 달려들어 성공했다는 이야기 뿐입니다.

씨바, 저런 성공스토리를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보다 '언론에서 또 지랄하네'라고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살아온 배경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열정도, 꿈도, 노력도 모두 존중합니다만 그들의 성공을 '돈 버는 사람들'로 포장해버리는, 그리고 그것을 '성공의 궁극'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또한 이제 서서히 '편견을 깨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벽'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사관학교를 그만둔 지 9년, 서울에 올라온 지 8년, 대학에 다시 들어간지 5년.

대학 졸업학기부터 구직을 하면서 대리운전을 시작한 이유는 '제가 원하는 직종에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7학기까지 계속 비정규직으로 일을 해왔습니다만, 이런 목표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또 다시 덤벼든 것입니다.

이유는 딴 게 아닙니다. TV에 나오는 중3짜리 애도 '커서 무엇이 되고 싶어요, 무슨 일을 할 꺼예요' 라고 선언할 수 있는데, 저는 세상을 알아갈수록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채로 살아오다가 이제 조금씩 제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심지어 'Career path'라는 걸 대충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 삶의 방향이 이젠 더 물러서지 못 하도록 막아섭니다. '최저 생계를 유지하되 하고 싶은 일을 할 것'. 온갖 사회적 편견이 가득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서른의 대졸'. 하고 싶은 일은 인터넷 업계 쪽임에도 너무 늙은 신인이 되어버리는 사회. 그저 두드리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의지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최저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작은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갔습니다. 원래 대기업은 바라지도 않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곳보다 약간 규모가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기에 그만큼 원서를 쓸 기회도 적었으나. 해오던 일을, 하고 싶던 일을 대졸 신입으로, 정규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건 무척 다행인 일입니다.



지방 국립대를 나오고, 지방의 작은 회사에 회계 쪽으로 취업한 지 6개월 된 후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일터가 싫다고, 비합리적인 회사가 싫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아마 여느 선배라면 조금만 참고, 2~3년 경력 쌓고 그 때 옮기던가, 어떻게든 버티면서 인정받으라고 조언해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배가 그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또 다시 대면하게될 학력차별과 사회적 편견들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알고 있음에도.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니가 원하는 직장을 찾으라는 것 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 후배들에게 이런 선배로 남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을 '기득권이 권위적으로 내리누르는 사회구조의 하부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이건 회사나 국가나, 모든 조직체에 당연히 적용되는 생각입니다.

내 지인들에게 당당할 수 있게 살아가는 것. 그거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아둥바둥 노력하는 것이, '최저생계 이상의 돈'을 더 많이 벌기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보다 분명히 낫다고 확신합니다.



그토록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아온 30년이 이젠 빚 2천만원 정도에 현금은 거의 없고, 월세보증금 2천만원 정도로 살아가는 또이또이한 인생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할 생각도 없고 그저 재미나게 우리 가족 안 굶고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업? 그저 생계를 유지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내가 일하고 싶은 조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더 좋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 결혼을 포기해야될 것 같은 사회의 '또 다른 편견'이 찾아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우리에겐 서로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리고 그런 삶이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이끈다는 믿음을 주는 '지인'들이 있잖습니까? 이런 유대감으로도 우린 충분히 세상의 편견을 바꿀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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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합격 소식은 지난 달 제주도 놀러갔을 때 들었습니다만, 지난 주 신입사원 OJT 교육을 받고 나서 입사를 완벽하게 마음 먹었습니다.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보수적이라서 좀 심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접고 다시 또 10개월간 대리운전 생활을 하면서 구직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다행히도 외부에서 경력직으로 들어와 일하는 선배 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타 계열사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깨닿고 '또 다른 편견'을 깨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들의 이야기도 '인지부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합리화한 과정의 일부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어느 회사 면접을 가든 다른 신입사원 면접자들이 제게 놀란 것은 '긴장 없는 태연함'이었습니다. 피식 웃을 수밖에 없지요. 제 친구들 말처럼 저런 10~20대를 보내면 왠만한 상황에선 탱자탱자입니다. ㅋㅋ

어쨌거나 마스크나 어법 때문에 어딜가나 신입사원 취급받긴 어렵습니다만. 신입은 신입일 뿐인 겁니다.

7월말까지 연수원으로 들어가서 인터넷이 두절됩니다. 다들 즐거운 휴가철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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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우 님께서 이어주신 '편견타파 릴레이'가 있었습니다만, 이 글로 대체를 하되 릴레이를 이어가진 않겠습니다. 릴레이를 시작하시고 이어오신 분들의 의향이 무척 훌륭하고 좋으며, 존중합니다만. 역시 글이란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편견이 타파되길 바라며.

Posted by 함장

2009/07/19 18:10 2009/07/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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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을 시작하시려는 분들께

경기가 많이 안 좋아지고, 자영업을 하시든 월급쟁이시든 수입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 - 상대적 수입이든 절대적 수입이든 - 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앞으로 더 심하게 지속될 것 같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국가 자체가 가지고 있던 비전이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이는 누굴 탓할 것 없이 순전히 아직도 '한나라당'을 이 땅위에 내버려 두고 있는, 그들 속에 빌붙어 먹고 사면서 - 혹은 뒷돈을 대고 있을지도 모르는 - '뉴라이트' 같은 단체가 생겨나게 만든, '국민' - 이라고 쓰고 '황국신민'이라고 읽습니다 - 탓입니다. 아마 '시민'이라면 이런 막장까지 오진 않았겠지요.

각설하고.

제 나이 서른에 취업을 위해 숨을 고르려 시작한 대리운전이 벌써 만 4개월이 되어갑니다. 작년 9월 경희대학교 경영학 / 신문방송학 복수전공 마지막 학기를 시작으로 구직을 한지 5개월째입니다만 - 물론 지원을 IT쪽 기획자나 경영지원 / 전략기획 / 기획 / 광고영업 쪽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일이 그거고 적성에도 맞거든요. - 앞으로도 꾸준히 취업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아마 5월이 넘어가면 그냥 판촉 영업 사원에 발을 디밀지도 모르지요. 졸업 후 한 학기가 지나가는 시점이 될 테니까요.

어쨌거나 나이 서른에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대학교 졸업예정 - 다음 주 수요일에 졸업합니다 - 할 녀석이 대리운전을 하는 것도 드물 겁니다. 참고로 작년 8월까지는 학업과 함께 소프트웨어 기획과 웹 기획일을 하던, 싸구려 일꾼 - IT 쪽 일이라서 싸구려가 아니라 고졸이어서겠지요, 제 능력이 싸구려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 이었습니다. 서울에 맨손으로 올라온지 만 7년이 되었고 그 사이도 쭉 혼자 벌어먹고, 고향에 돈 부쳐주고 잘 살아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미리 깔고 시작하는 이유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들은 욕, "젊은 놈이 할 게 없어서 대리운전이냐?"라는 욕이 또 다시 이 글에 달릴까 씁쓸해서 입니다. 물론 전 지금 제가 하는 대리운전이라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어쨌든 시작해보죠.

1. 대리운전 서비스의 정의
대리운전은 그냥 술취한 차주 대신 차를 운전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 하면 이글 중간에 대리운전 단가에 대해 얘기를 잠깐 할 것인데 손님에 따라 '어떻게 택시비 보다 비싸냐?'고 묻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정의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음주운전을 통해 즉심으로 넘어가서 물게 되는 벌금은 100~200만원이 됩니다. 그리고 음주운전이라는 것은 미국의 어떤 주(state)에서 '이급살인'으로 분류될 정도로 본인을 비롯한 도로상의 다른 운전자에게 위험한 행위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에 가시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같이 술 마신 일행의 택시비까지 걱정하는 오지랖을 발휘해서 서울 곳곳으로 일행을 데려다주는 분도 있습니다만... 이건 돈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의 시간을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비용으로 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다음 날 아침 일찍 차가 필요해서 집으로 가져가야 하실 때만 대리운전을 이용하시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예 집이 멀어서 집에 가는 택시비보다 대리운전 비용이 싸게 먹혀, 늘 차를 가지고 나와 술을 드시고 대리운전을 이용하시는 분도 있습니다만 글쎄요... 뭐 일단 이런 분 때문에 대리운전 기사들이 먹고 사는 것일 테니 개인 시각차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대리운전 서비스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인적, 물적, 심리적피해의 사전 방지나 그 외의 운전 불가능 상황에 대해 제3자의 도움을 얻어 대처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라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2. 일반적인 대리운전 시스템 - 광역기사
대리운전은 하나의 회사 - 쉽게 얘기해서 1588-xxxx 같은 전화번호 하나 당 하나의 회사라 보면 됩니다 - 에 속한 기사들이 그 회사의 전체 수요(앞으로 편하게 콜이라 쓰겠습니다.)에 대해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건 하나의 거대 독점 회사가 나타나기 전에는 수익 창출이 아예 불가능합니다. - 물론 제가 들여다 보니 이거 충분히 소프트웨어랑 개발 기획 설계만 잘 해도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는 독점 벤처가 나올만 합니다만 ㅋㅋ - 몇 개의 회사 들이 연합을 하여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고 그룹 내부의 회사끼리 대리운전 콜을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개그맨 강 모씨가 광고하는 대리운전 회사에 전화를 해서 대리기사를 부르더라도 실제로 나타나는 기사는 해당 전화번호의 기사일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해당 전화번호를 가진 회사에서 가입한 그룹에 속한 기사가 오는 것이죠. 그룹 당 회사 수를 보더라도 다른 회사의 기사일 확율이 훨씬 높죠.
대리운전기사들을 보시면 죄다 손에 PDA나 휴대폰 1~2개 정도를 늘 들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 물론 무전기로 하는 법인도 있습니다. -  이 모바일 기기에 설치된 소프트웨어로 서버와 통신하면서 소비자인 차주와 서비스 공급자인 대리기사 사이에서 Contact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시스템이라서 서비스 질에 대한 관리가 거의 안 됩니다. 무척 열악한 수준인 거죠. 손님들이 "1588-xxxx는 언제나 친절한 기사를 보내주는 것 같아" 혹은 "1588-xxxx 얘네 안 되겠네, 뭐 이런 기사를 보내?" 하시는 데 그거랑 크게 연관이 없습니다. 고객이 기사에 대한 항의를 해도 이미 그 때는 서비스를 받은 후인데다가 해당 기사가 자기 회사 소속이 아닌 그룹 내 다른 회사 소속이라면 자기 회사의 콜만 서비스 공급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수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 메이저 회사들마다 하부엔 지사들도 꽤 여럿이고 지사별로 뽑은 기사들에 대해 일일이 인적자원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죠. 인적자원관리란 말 조차도 붙일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시스템 - 흔히 보는 손에 PDA와 휴대폰을 들고 다니시는 대리운전 기사분들 - 으로 대리운전 하시는 분들을 '광역기사'라고 합니다. 수도권 전체 어디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분들입니다. 프리랜서라고 볼 수 있죠. 더불어 광역기사가 동일한 손님을 또 만날 확율은 로또 4등에 걸릴 확율보다 약간 높은 수준일 겁니다.

3. 조금 특별한 대리운전 시스템 - 지역기사
대형 주차장을 끼고 있는 고기집이나 공영주차장 골목, 나이트클럽이나 룸싸롱, 모텔 촌 앞에서 자주 보실 수 있는, '대리운전 1588-xxxx'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booth가 있습니다. 이 booth는 해당 번호를 가진 회사에서 운영하는 booth이며 그 booth가 있는 업소와 주변 업소들에 대한 대리운전 콜은 다 이곳으로 집중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콜을 그 booth에 출근하는 지역기사들이 처리합니다. 광역기사와 달리 굳이 고생해서 휴대폰이나 PDA에 의존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면 일정 수준의 콜이 나옴으로 인해 어느 정도 고정 수입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만 불경기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게다가 각 회사마다 지역기사는 인원을 무한하게 뽑을 수 없습니다. 광역기사는 어느 정도 많아도 상관이 없지만 지역기사는 자신들이 창출할 수 있는 콜보다 더 많을 경우 기사들이 불만을 갖고 이탈할 수도 있으며 이는 곧 자신들이 영업한 업소에 제 때 대리기사 인력을 공급하지 못 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거래처를 놓칠 수 있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기사는 '인상 좋은' 사람들 위주로 어느 정도 착실하고 트러블 안 만들 사람들로 채워 넣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역기사는 거래처가 늘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같은 손님을 여러번 만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4. 대리운전을 시작하려면 필요한 것
물론 1종 보통 면허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스틱이 잘 없다 하더라도 - 참고로 전 2.5톤 트럭도 몹니다. - 1주일에 최소 3회 이상 스틱 차량을 만나게 됩니다.
더불어 당연히 '운전자 보험'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없으시다면 대리운전 회사를 통해서 대리운전자용 보험을 가입해야만 운행이 가능합니다. 보험료의 경우 1달에 60,000원 선이며 이는 당연히 사고 경력과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금액입니다. 참고로 최근 2년 안에 사고 경력이 있다면 불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광역기사용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 설치비(회사마다 조금씩 다를 겁니다. 15,000원 정도?)와 해당 소프트웨어 이용료 매일 500원(그래서 한달에 또 15,000원 정도 지출).
그리고 당연히 휴대폰이나 PDA와 같은 무선 인터넷 기능이 가능한 휴대전화가 있어야 하며 데이터요금제도 하나 가입하셔야겠지요.
위의 것만 준비되면 당장 시작은 하실 수 있습니다.

5. 수입과 지출
수입에 대한 룰은 각 회사별로 조금씩 다릅니다만 광역기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모든 '공고화된 수입' - 서버에 기재된 정보 - 의 20%를 회사에 떼입니다. 일종의 손님 전화를 받아서 서버에 올려준 수수료라 볼 수 있죠. 이는 '선납'입니다. 고로 회사에 20,000원을 선납해두면 저는 휴대폰이나 PDA를 통해 총 100,000원 어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금액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지역기사의 경우 각 회사별로 심하게 룰이 다릅니다. 어떤 곳은 30%를 수수료로 떼는 곳도 있거니와 아예 출근해서 순번을 기다리는 비용으로 1,000원을 따로 받는 곳도 존재합니다.
더군다나 이동을 늘 발로만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운행한 목적지가 외딴 곳이라던가 주택가라면 콜이 나타나는 번화가로 반드시 움직여야 하므로 하루에 일정액 이상의 교통비가 반드시 지출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지출은 혹여나 사고가 생겼을 상황입니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고객 중 상당 수가 일정 수입 이상의 부유한 계층이기 때문에 차량도 고급 기종이 많습니다. 이 크기와 컨트롤에 익숙하지 않으면 범퍼 하나 깨먹는 건 쉽습니다. 보험 적용을 하더라도 자기 부담금 2~30만원은 기본에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6. 그래서 얼마쯤 버는가?
10월 16일부터 오늘까지 수입에 대해 평균을 내어 봤습니다. 참고로 이 평균은 제가 제 미투데이(http://me2day.net/harmjang)에 기록한 그날 그날의 '순수입'을 토대로 구한 것이며 표본오차랑 분산까지 구해드리고 싶으나 너무 졸린 관계로 산술 평균만 보여드리겠습니다. 계산하시고픈 분은 직접 제 미투데이에 가서 '대리운전' Tag로 나오는 값들을 요리해보시면 됩니다.

더불어 "순수입"이란?

당일 총 매출액(손님에게 받은 현금) - 교통비 - 콜비(수수료) - 혹시나 도중에 식사를 했다면 식사비 = "순수입"

이 됩니다.

우선 10월 16일부터 오늘까지 쉬었던 날 (꽤 많이 쉬었드랬지요) 제외하고 총 순수입이 372만 800원입니다. 얼추 월 90만원 수준이죠. 수수료와 교통비를 포함한 매출로는 월 125만원 수준입니다. 평균이 이렇게 낮아진 이유는 1월 말(설 전과 설 연휴)에 거의 2주나 쉬었기 때문입니다.

요일 평균을 보면

월요일 = 45,090원
화요일 = 58,181원
수요일 = 50,253원
목요일 = 50250원
금요일 = 67,416원
토요일 = 55,000원
일요일 = 33,166원

수준이며 1주일에 평균 218,870원의 순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제 미투데이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1주일에 꼬박꼬박 20만원씩은 통장에 박고 있지요.

7. 어떻게 해야 이만큼 버는가?
이게 가장 주효합니다. 저는 참고로 지금 대리운전이 생업입니다. 낮에 하는 일은 취업 사이트를 둘러보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고, 저녁 6시쯤 집을 나서서 7시쯤 지역기사가 출근하는 booth에 도착합니다.
저는 10시 정도까지는 지역기사 역할을 하며 초 저녁에 나오는 고깃집들의 콜을 처리하고 10시 이후로는 광역기사로 바뀌어 PDA - 실제로는 스마트폰 - 를 들고 수도권을 누빕니다. 그리하여 새벽 1~2시 쯤엔 무조건 막차라도 타고 집에 들어옵니다. 그 이상 한다라면 매출 2만5천 정도 더 버는 대신에 첫 차를 타고 집에 와야 하기 때문이지요.
지역기사는 순번만 기다려서 콜을 받아 손님을 모시면 됩니다만 '묶여있는' 존재이며, 광역기사는 목적지와 단가를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는 대신에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휴대폰과 PDA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키면 초저녁부터 9~10시까지는 수도권 총 콜 수가 채 100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도 4~5개의 난립해 있는 소프트웨어마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4~5개 소프트웨어를 모두 설치하고 - 각 소프트웨어마다 매달 들어가는 비용이 듭니다 - 도착하는 지역마다 가장 유력한 소프트웨어를 구동시켜 탑니다. 제 경우에는 하나의 프로그램만 구동시켜 이것에 의존합니다. 각기 장단이 있습니다만 제 경우엔 장점보다는 그냥 '돈은 적당히 먹고 살 정도로만 벌면 된다'는 주의라서 그런 겁니다. 평균적으로 기본 2개 정도는 설치하고 다녀서 휴대폰도 두 개씩 들고 다닙니다. PDA는 하나에 여러 개가 설치가능하니까요.
초저녁에 수도권 총 콜수가 적은 이유는 실제로 적어서가 아닙니다. '지역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콜을 모두 커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을 요청할 경우에만 '지역기사'를 보내지 않고 광역기사들이 처리하도록 서버에 올립니다. 그래서 초저녁에 소프트웨어에 올라오는 금액이 대부분 짭니다. 대부분의 지역기사들은 그 가격에서 5천원 정도 더 높은 가격에 '빠른 서비스'를 해드리는 겁니다.
이런 시스템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싼 가격에 대리운전 기사를 요구하면 그건 운에 맞기는 꼴이 됩니다. 고객 가까운 데 있는 대리기사 중 그 가격에 가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잡아가라는 것이죠. 그래서 손님이 대기하는 시간이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40분이 될 때도 있는 겁니다.
그럼 이제 적정단가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겠죠.

8. 그럼 과연 적정단가는?
사람들이 대리비용을 고민할 때 거리로 따지는 분들이 많은데 대리운전은 '택시' 서비스가 아닙니다. 운전자가 이동해서 손님을 모시고 목적지에 간 후에 다시 다른 손님을 탐색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 비용을 고려할 때 여러가지를 고민해야하죠.
1) 출발지가 지금의 내 위치에서 가까운가? 택시 기본요금 정도를 치르고 이동해야하는가?
2) 목적지에서 다음 고객을 찾아내기가 쉬운가?
3) 운행하는 시간은 얼마인가?
4) 운행 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번화가로 이동할 수 있는 시간대인가?
최소한 위의 4가지를 고려하고 움직여야 하는 게 광역기사입니다. 지역기사도 주로 심야에 서비스하는 나이트라던가 룸싸롱의 경우엔 위의 것을 염두에 두고 단가를 책정하겠지요.
위에서 밝혔다시피 사실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위치'와 '시간'이 단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대리기사들이 고작 5천원 더 받으려고 심야에 오지로 들어가진 않는 겁니다.

제 경우엔 대리운전 시장의 적정단가를 시간당 7,000원 정도의 아르바이트 임금으로 봅니다. 아마 이 선이 무너지는 경우 - 물론 부업이 아니라 주업으로 하시는 분들 - 엔 주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분명 다른 일을 찾으셔야 할 겁니다. 아 그렇다고 차로 20분이면 가는 거리니까 7,000의 3분의 1인 2천3~400원에 가면 되겠네 하시는 분은 없겠지요?

이 적정임금을 도출한 이유는 순전히 '시간' 때문입니다. 아무리 콜이 낮 시간대에 간간이 한 두 개 정도있다 하더라도 메인 타임은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가 고작입니다. 금요일이 아니라면 1시도 벅찰 정도로 1시 이후에는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어 퇴근시간 직전대와 같은 정도의 수도권 총 콜 수를 유지합니다. 이 5시간 안에 순수입 35,000원. 즉 43,750원+교통비의 매출을 올려야 시간당 7,000원의 임금이 달성됩니다. 쉬워보이십니까?

개그맨 강 모씨가 대리운전 라디오 광고로 부각되면서 모든 대리운전 기사의 껌이 되어버린 이유는 딴 게 아닙니다. 광고를 엄청나게 하는 대규모 업체들이 단가를 낮추다보니 말도 안 되는 단가들이 나와버립니다. 수도권 어디든 1만원대 후반이라는 가격은 대리를 처음 시작한 풋내기나, '돈'이 절절한 사람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하게되는 콜이 되어버립니다. 회사 측에서는 안 타도 그만, 타도 그만 수수료는 20%니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리기사들에게 돌아가는 것이죠. 오히려 박리다매로 광고를 많이 하여 콜만 많이 창출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빚어진 일입니다.

이로 인해 대리기사들은 목숨걸고 액셀 밟아 가며 하나라도 더 타려고 아우성이고 또 다시 이 피해는 손님들에게 '과속 딱지', '신호 위반 딱지', '교통사고 위험'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그 위반 딱지들은 해당 대리기사에게 청구하면 됩니다만 과연 성공하신 이용자분들이 계신지요?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위의 표에 그려 놓았듯 하나 뿐입니다. 빨간 색깔 박스처럼 콜센터에서 가격을 매겨 올려놓은 걸 노란색 박스 단계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거부'해야하는 방법 뿐입니다. 물론 이렇게 해도 그 싼 가격에 탈 사람은 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마지막 숨통마저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위에 언급한 5시간 중에 잘타면 3콜을 탈 수 있습니다. 1만원짜리 3개를 타는 날도 있고 2만5천원짜리 3콜을 타는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이 매일 좋을 수는 없습니다. 제 수입 금액 평균이 말해주잖습니까? 심지어 하루에 1콜 타고 집에 들어가는 날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만큼 경쟁이 심한 것이 대리운전입니다. 밤 11시 이후 버스를 이용해 보시면 탑승객 중 상당 수가 대리운전 기사라는 걸 눈여겨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9. 양아치
대리운전 회사 중에 참으로 양아치짓을 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휴대폰이나 PDA 소프트웨어를 통해 콜을 선택했다가 취소하는 경우 500원씩 수수료가 떼입니다. 의례적으로 출발지부터 읽게 되어 있어 특이사항을 출발지 앞에 적어 넣습니다만 이를 도착지로 교묘히 빼내 - 예를 들어 '여기사 요청'이라던가 경유한다는 정보를 도착지 맨 뒤로 빼둔다던가 -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500원씩 떼이게 하는 회사부터 시작해서 한 명이 가입한 보험증 번호로 자기네 회사 모든 기사들을 다 등록하고 기사들의 보험비는 죄다 몰래 챙기는 파렴치 사장도 있었습니다.
대리운전을 시작하신다면 회사도 잘 고르셔야 합니다.
정말 사업을 착실히 하려는 사장인지, 자기 기사들을 얼마나 잘 챙기려 하는지.

그리고 가장 크게 각오하셔야 하는 건 정작 스스로 본인입니다. 나이 꽤 드신 분들은 가정도 있고 자신이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잘 견딥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도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1천원에 벌벌 떨면서 스스로 양아치가 되어가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청춘이 투 잡으로 할 때는 잘 고려하셔야 합니다.

전 어릴 때부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것'에 익숙합니다. 이것은 곧 부지런함과 이어집니다. from hand to mouth의 필수 요건은 하루만 쉬어도 삶에 데미지가 크다는 점입니다. 이는 혹시 일당을 벌어오는 부모를 둔 가정에서 자라셨다면 무척이나 잘 알 겁니다.



밤거리, 특히 먹자 골목의 밤거리에 뿌려진 찌라시는 크게 두 종류입니다. 나이트나 대딸방, 오피스텔걸 등 유흥업과 성매매를 위한 것과 대리운전. 그 뿐입니다.

대리운전을 시작하는 순간, 자신이 하루에 버는 돈의 몇 배, 혹은 2~3십배를 술값이나 성매매에 쓰는 사람들 속에서 조용히 거닐어야 합니다. 그걸 각오하셔야 합니다.

Posted by 함장

2009/02/13 07:51 2009/02/1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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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습니다.

한 동안 뜸 했었쥬?

뭐 이차저차 바쁜 일 끝내고 연말이라도 한가한 이유는 실직 상태라서지효 ㅎㅎ

4학년 2학기가 이제 끝났다지만 일은 쭉 해오고 있었으니까요.

8월말로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구직을 시작했습니다만 예상했던 T.O가 공중분해되는 바람에 꼬여버렸습니다.

뭐 어쨌든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시작했습니다.

10월 중순부터 했으니 벌써 2달이 됐네요.

Daum에 넣었던 지원서는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다가 결국엔 T.O가 동결된 듯 싶고, 1,000대 기업도 채용이 경색되어 지금 당장 뭐 어찌할 수가 없네요.

그 사이 토익도 두 번 봐서 830점은 맞아 뒀는데.... 이거 써먹을 수나 있을런지. ㅋㅋ

암튼.

매일 밤마다 나가는 일이다 보니 사람 보는 게 많이 소홀해 졌습니다. 온라인 지인들도 근 2년을 못 만나다가 오늘 몇몇 분을 겨우 뵈었어요.

낮에는 올드보이님의 초청으로 더나무에서 퓨전 한식과 함께 와인도 마시고, 나와서 따스한 겨울 볕에 복분자 주도 걸쳤습니다.

술도 한 잔 했겠다. 오늘 대리운전은 때려치고 미투데이 연말 파티에서도 마음 껏 마셨더랬지요. 나특한님을 처음뵙는다고 착각도 하고, ㅋㅋㅋㅋ 쎔군도, 백일몽님도, 너무 오랜만네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대학 다니면서 밤에 일하면서, 주말에도 일하면서.

너무 많은 걸 잃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너무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조용히 구석에 앉아 지난 걸어온 6년을 돌이켜 본 좋은 밤이었습니다.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지금 이순간 가장 나를 바로 서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가야겠지요.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저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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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함장

2008/12/24 00:48 2008/12/2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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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tory 쫑파티 후기

지지난 주 금요일에 홍대 Daum Office에서 Tistory Beta-testing 쫑파티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쫑파티라는 단어를 선호하진 않지만 - _-)a) 신어지 님과의 약속도 약속이거니와 거의 개점 폐업인 상태의 블로그를 2007 우수 블로거로까지 선정해 준 Tistory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할 길이 없어서 냅다 Beta-testing을 했기 때문에 마음 한 켠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놀러 갔습니다.


티스토리 양과자

깔쌈한 양과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더군요. 손가락으로 T 중앙을 푹 찔러 넣고픈 충동이....(그런 것 따위가 생길리가 - _-)a)


홍대 Daum Office는 처음인데 요런 예쁜 '일제' 차량(?, 일제가 아닐 수도 어쨌든 핸들이 우측에 있으니 섬나라 차량)이 놓여져 있더군요. 홍대 주변이야 워낙 일본 문화가 판치는 곳이니 아마 그에 맞춘 듯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차량의 용도는 커피 타임을 즐길 수 있는 뭐 그런 용도 같은데 사람을 빙~ 돌아가게 만들어 놓아서 좀 불편한 감이 있었지요.


롤링 페이퍼 대신에 참가자가 제공한 사진들로 포스트잇을 담아갈 수 있는 폴더를 만들어 놓으셨더라구요. 덕분에 제 사진 한 장 건지고 몇 몇 처음 뵙는 분들과 지인들의 '방가' 메시지를 얻어올 수 있었습니다. 블로거 모임에 6년 정도 나가면서 깨달은 건 '많은 분'들을 알기 보단 '한 분'이라도 얼굴과 닉네임을 매치 시켜서 알아두는 게 서로에게 '피곤하지 않은' 인간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역시 이 날도 그냥 조용히 있었지요. 물론 제가 얘기하는 '조용히'는 영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여전히 제 목소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합니다.


일부러 굶고 갔는데 우왕국. 죠낸 맛난 아이템들이 득시글 했어연. ㄱㄱ ㅑ~


젓가락까지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한 것에 대해 준비하셨던 여러분께 모두 감사를 (사실 베타테스트를 급조로 허겁지겁 해서 민구스러웠다능). 저 리본으로 묶인 젓가락이 넘 심플하고 예뻤다능.


'자칭' 샨새교 교주님입니다. (아시죠? tistory 한글 입력으로 치면 샨새교 되는거?) 이 분은 저를 상당히 고깝게 여기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저 같은 일개 블로거를 고깝게 여길만큼 한가하셨을 리가 없지요. 엄청 바쁘셨고, 말씀도 얼마나 잘 하시던지 레크레이션 강사 뺨치겠더이다. 제가 돌발퀴즈 'wysiwyg.css' 정답을 불렀을 때 full words까지 요구할 때 그 고까워하셨던 눈빛또한 기억하겠나이다. ㅋㅋ

사실 Tistory와 같은 서비스에서 일종의 팬 문화랄까? 충성도 높은 사용자 층을 바라고 생겨난 '자연스러운' 마케팅 현상 - 마케팅이란 단어가 너무 차가운 시선이 아닌 CS 측에서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두고 싶어요 - 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늘 '무언가 조금 독특한' 것을 바라는 Tistory User로서 샨새교 문화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볼 수 밖에 없어요.

뭐랄까... '난 Tistory를 써!' 하는 브랜드 종속적인 내가 아니라, '난 개별의 독립적인 인격체'야! 라고 외치기 위해서 블로그를 하는 저로서는 저런 '소속감'이 조금 낮선 풍경이기도 해요. 이게 좀 골 때린 게, 예를 들어 Tattertools를 쓸 때도 '우리는 태터유저'라는 소속감이나 '우리는 블로거'라는 소속감에서 사람들을 그러모으는 풍경에 늘 노출되고 익숙해질 법 한데도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요. 게시판에 글을 쓰든 블로그에 글을 쓰든 우리는 '글을 쓰고 사진을 보여주려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가끔 잊고 마케팅을 하는 것 같아요.

이건 솔직히 이 나라 폐해이기도 한데 - 씨바 도대체 전국에 '경영학사'로 졸업하는 인구가 한 해에 얼만가효? - 전부 경영마인드가 몸 속 깊숙이 박혀 있으니 자꾸 시장세분화하고, 고객을 충성시키기 위해 무언가 아이템을 만들고, 시장을 개척하고, 사람들을 '종속'시키고.... 이게 무슨 하나의 공식처럼 전 인구의 머리에 깊숙히 박혀버리는 건 아닌가 솔직히 두려워요.

물론 이건 부정적인 측면만은 아니에요. 현대 사회에서 이런 social network로 분명 외로움을 치유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Tistory 베타테스터를 모아서 '노고'를 치하해준 Daum에 감사해요. 저도 밤샌 보람을 맛난 빵과 스시들로 가득 채우고 돌아왔어요. 더군다나 몇몇 새롭고 위대한 블로거 분들을 뵙고 기억할 수 있어서 제겐 더욱 의미있는 날이었죠. 잠깐 잠깐 스쳐가던 온라인 유명인들을 볼 수 있는 오프라인 미팅의 메리트는 정말 삶의 활력이랄까요?



즐거운 쫑파티였습니다. 돌아올 때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폭주했다능.

결론은 빗길에서 안전운전 (응?)

Posted by 함장

2008/08/11 15:00 2008/08/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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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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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단상

어버이날 지나고 내려가기엔 애매한 연휴라 지난 주에 미리 고향에 들렸다.

생활비만 드려왔지 변변한 선물 한 번 해드린 적이 - 물론 부모님 생일 때도 - 없어서 이번에는 맥북 판 돈도 좀 있겠다, 무언가 해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교외로 나가 봉성에 있는 숯불 돼지고기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1인분이 500g 인데다가 만원 밖에 안 한다. 더군다나 미리 구워서 나온다. 정말 싸고 맛 좋다.

다시 시내로 차를 몰고 나가면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영주에 거 마사이 족 신발 파는 데 있냐?"
"오거리에서 가고파 극장 가다가 우측에 있어요."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다. 중소도시에도 하나 있으니.

아버지는 모터싸이클만 내리 10년 넘게 타셨던 이후로 무릎에 바람이 들어서 사다리 - 아직도 사다리 오르내리는 간판장이시니 - 타면 아프시다 하시고,
어머니는 한번 다치신 이후로 걷기만 하셔도 무릎이 아프시다 하시니 늘상 마음에 걸리던 게 이거였다.

'뭐 한 켤레 돈 십만원 하그찌'

가격은 묻지 마시고 마음에 드는 색깔이나 고르시라고 얘기했다.

이것 저것 신어보시고 걸어도 다녀 보시더니 끝내 주인장에게 가격을 물으신다.

"한 켤레에 이십구만칠천원입니다."

내심 놀란 건 나다.

'뭔 신발이 왤케 비싸?'

어머니나 아버지나 묵묵히 신발만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아 가격 신경쓰지 마시고 색깔이나 마음에 드는 거 고르시라니께네?"

아버지는 신발 안을 들여다 보면서 'Made in China'랑 'Made in Vietnam'만 용케 찾아내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핑크색을, 아버지는 그냥 무난한 회색을 고르시고, 결국 두 분 다 한 켤레씩 구입해서 매장을 나왔다.



두 분 평생 3천원 뺀 30만원짜리 신발은 처음 신어 보신 게다.

형 장가갈 때 형수네서 혼수로 해오는 물품도 서민답게 예의만 갖췄지 비싼 거 아니 원하셨던 분들이시다.

물론 나도 30만원짜리 신발은 커녕 신사화도 제일 좋은 게 군용 에스콰이어 보급 단화가 고작이었다.

그런면에서 이건 일종의 사치였다. 일상에서 신을 신발도 아니고 - 사실 저 마사이 족 신발은 걷기 운동 외에는 좀 불편해 보인다 - 산책하시고 걷기 운동 하실 때 신으시라고 사드린 '레저용 신발'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거리 신호등에 걸려 멈췄을 때 어머니가 얘기를 꺼내셨다.

"엄마가 너들 메이커 있는 옷도 한 번 못 입혀보고 키우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아나?"
"아이고 엄마, 다른 애들한테 밑보이지 말라꼬 맨날 깨끗하게 옷 입힐라꼬 고생한 거 내 모르는가? 말이사 바른 말이지, 메이커 한 번 못 입어보고 크는 바람에 나는 '메이커'가 뭔지도 모른 채 컸잖는가?"
"그렇나? 엄마도 똑같데이, 엄마도 뭐 메이커를 써 봤어야 메이커를 살 줄 알쟤."

한바탕 차 안이 웃음으로 가득했다.

사실 그러고 보니 내가 '나이키'라는 상표를 인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들어가고 나서였다. 농구화가 몇 만원 한다는 사실도 내겐 충격이었는데, 우리 엄마는 농구화처럼 생긴 신발을 5천원에 난전에서 구해 오셨기 때문이다.

신발 뿐이던가, 난전표 티셔츠, 난전표 잠바....



집에 돌아와서 참외 하나 깎아 먹고 어머니는 새 신발을 신고 동네 운동을 나가셨다.

그리고 들어오시다가 지퍼가 다 나가 떨어진 내 신발을 보셨다.

"아는 다 떨어진 신발 신기고, 부모란 게 30만원짜리 신발을 사 신네 그려"
"거 2만원짜리 신발 쫌만 신으면 다 닳두만, 올라가서 새로 사 신을 끄여"



오늘도 수업 시간에 '브랜드 충성도'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 대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지금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건지, 아니면 이 엿 같은 상황을 무시하고 관조하는 건지, 아니면 어느 새 적응하고 사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여자들끼리 모임에 '명품' 하나 정도 꿰 차고 나가야 쫌 있어 보이는 사회.

남자들 패션에 '명품' 하나 쯤 걸쳐야 '패션 감각'이나 '센스'가 있어 보이는 사회.



그나마 위안인 것은 내가 '부모님께 명품 하나 장만해 드려야지'라는 마음이 아니라 부모님 무릎 아프시고 허리 아프실까 부담 좀 줄여 드리려 '기능'으로 신발을 골랐다는 점일 게다. 그렇기에 사실 지불 능력이 있어서 '뭔 신발이 이리 비싸' 생각은 했어도 '돈 아깝다'는 생각 따윈 들지도 않았다.

평생 보세는 커녕 시장 난전에 널린 옷 가지나 사 입어 오던 가족.

1년 내내 쇠고기는 커녕 돼지고기 한 번 먹을까 말까 했던 가족.



난 서울 사는 고모네가 우리 가족 올라올 때마다 돼지고기를 구워 주길래 되게 잘 사는 줄 알았다. 물론 우리 집 보다야 잘 살았지만.

서울 와서 벼래 별 짓 다 하면서 부모님 생활비까지 챙겨도 1년은 커녕 1주일에 몇 번씩 고기를 먹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 기가 막혔다.



왜 우리나라는 '지방'에서 우리 부모님 모시고, 1주일에 한 번 외식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으면서 여유있게 살기 어려운 걸까?

아니, 왜 그렇게 사는 방법을 억지로라도 막는 걸까?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어서, 내가 아직 고향에 살았더라면. 아직까지도 취업은 커녕 공사판에서 노가다나 뛰고 있었을 게다.

서울로 올라와 돈은 조금 더 벌었을 지언정.

부모님께 뭐 제대로 해드린 것 하나 없다.

지방 어딜 가나 듣는 이야기.

'누구네 아는 서울 가서 돈 잘 벌고 있댜'

도대체 누가 자식키워 서울, 뉴욕 보내려 뒷바라지만 하는 세상을 만든 건가?



기회비용이고 나발이고.

난 우리 부모가 반평생 고생하시며 날 키워주신만큼, 조금 더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도록 내가 노력하고 싶다.

그저 1년에 몇 번 고향에 내려가는 게 아닌.

고향에서도 어렵지 않게 취업해, 부모님 옆에서 돌봐드리며 월급 받아 가족이 즐겁게 웃으며 살면 그 보다 더 나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무한 경쟁이니, 시장 원리니.

그토록 자기 가치를 높이는 것과 그 돈으로 명품을 비롯해 자기 치장을 하는 것과.

가족끼리 작은 차에 모여 앉아 웃으며 저녁 나들이 할 수 있는 삶과.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마음은 후자가 그립지만 현실은 전자가 아니냐고?

씨바 '민주주의' 사회라면 후자를 이룰 수 있게 대다수가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비싼 신발을 온천이나 - 내 고향 영주에는 시에서 관리하는 온천이 있다. 목욕탕 정도로 싸다 - 공공장소에 두면 사람들이 가져갈까봐 고민하는 어머니께 결국 한 마디 했다.

"아 잃어버리면 또 사면 되잖는가?"
"그럼 아깝잖냐?"
"아 뭐가 그리 아까운가, 원래부터 없던 건데, 생겨서 잠깐이라도 즐거웠으면 됐지 비싸든 싸든 다 똑같이 발에 신고 다니는 건데, 잃어버렸다고, 누가 훔쳐갔다고 발만 동동 구르면 내 속만 타지 훔쳐간 놈 속이 타는가? 거 엄마가 불공을 그리 들였으면 법정 스님 '무소유' 정도는 생각해야되잖는가?"
"그래도 아들이 사준 건데 아깝지."
"아 거참 아들이 또 사준다니께네?"



자본주의를 치장하는 것은 욕심에 대한 허용이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는 방법은 과욕에 대한 제제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생각있는 사람들의 연대다.

Posted by 함장

2008/05/06 21:13 2008/05/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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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 블랙 팝니다 (판매완료)

넴, 아끼고 아끼던 맥북을 팝니당.

코어 듀오 (헷갈리지 마세용 코어 2 듀오가 아니라 코어 듀오예용) 2.0Ghz
메모리는 2G 박았구용
HDD 80G
사용기간 23개월
액정이나 몸체에 스킨을 붙이지 않은 채로 '마구' 사용했습니다. ㅋㅋ 물론 터치패드와 터치패드 하단 클릭 부분은 처음 살 때 스킨을 붙였구요.
박스부터 시작해서 내용물은 전부 있습니다.
물론 23개월 전에 산 것이니 설치DVD는 타이거겠지요.
아 물론 애플 케어는 '없습니다'. 이 점 유의하세용.

가격은 50만원입니다. 뭐 돈 받고 굳이 안 팔려도 제가 맥미니 대용으로 쓰면 충분하기 땜시롱 ㅋㅋ

거래는 직거래만 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지하철 3호선 '화정역' 근처의 스타벅스 같은 데서 하시거나
아니면 서울 합정역 부근일 경우 제가 있는 회사에서 거래를 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일단은 제 블로그에만 사진을 두고 KMUG 장터와 x86osx 장터, 미투데이에 링크만 걸어두겠습니다.

뭐 홍대나 합정역 부근이시면 제가 나가드리구용.

제 연락처는 0하나9 - 478 - 오륙팔삼 입니다. 뭐 함장 또는 권영준으로 통합니다.

참고로 제 '맥북' 중고는 이런 분들께 권합니다.

처음으로 '매킨토시'와 'MAC OSX'를 사용해보고픈 분 중에 가격이 겁나시는 분.
그냥 집에 맥미니 급 놓고 쓰시려는 분.
해킨토시 쓰다가 리얼 맥은 어느 정도일까? 고민하시는 분.



각설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사진 올라 갑니다. 모든 걸 까보여주고 직거래 때 '어? 이거 왜 이래요?' 하면서 네고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서로 얼굴 붉히기 쉬우므로^^

배터리 캡춰 사진 제외하고는 어제 찍은 사진 원본 사이즈 그대로 올리니까 꼼꼼히 보세용

일단 노트북이니까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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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 정보 보면 아시겠지만 오늘 만든 이미집니다. 미투데이에 그저께 '잔량이 12% 밖에 남지 않았어!' 라고 올렸는데 오늘 보니까 또 이러네요. 하긴 23개월 썼으니 오락 가락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ㅡ.ㅡ

그리고 이제 생활기스로 참혹한 외관을 보시죠 ㅋㅋ

우선 눈에 보이는 건 액정이니까 액정 부터 보여드릴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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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원이 꺼져 있는 액정 상태입니다. 화면 중앙에 허옇게 보이는 부분 - 형광등 말구용 - 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키보드에 묻은 제 '기름 지문'이 자판을 번질거리게 만들었는데용 그 자판이 노트북을 닫으면 액정에 눌리면서 그대로 키보드 모양대로 눌려 생긴 자욱입니다. 기름 때 제거하는 걸로 지우면 지워질 텐데 액정 전원을 켜면 밝기 때문에 눈에 안 보여서 안 지우고 쓰고 있습니당.

굳이 형광등에 비춰 찍은 이유는 저게 그래도 기름 때(?)다 보니까 빛에 비춰야 번들거려서 보이기 때문입지요.

자 그럼 액정을 켜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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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면 사과 마크 좌 상단에 검은 멍 2개가 보이실 겁니다. 저 멍은 당연히 '흰색'이나 '단색' 바탕에서 두드러져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팅 후 바탕화면을 비롯해서 작업하는 화면에서는 눈에 잘 안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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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화면 나오기 직전인데요, 보시면 불량화소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밝은 단색 바탕이라 좌 상단에 멍 2개가 보이지요. 우측에 하얀 대각선 같이 비스듬히 내려온 건 액정에 비친 뒷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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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부팅 후엔 멍이나 액정 외부에 있는 기름 자욱 같은 건 눈에 띄지도 않으니까용. 뭐 구입 후에 기름 때 제거액 같은 걸로 닦으시고 퓨어 플레이트 붙이시면 무난할 듯 합니다.

다음은 외관으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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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좌측 부분인데요 작은 점 같은 것이 생활 기스입니다. 아마도 제 시계나 옷에 붙은 철제 단추 등에 긁혀서 난 것 같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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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패드 부분입니다. 제가 노트북 쓰면서 늘 '키스킨'을 쓰지 않으면 키보드가 손기름 때문에 금방 번들거려지는 걸 알기 때문에 키보드는 무시하고 터치패드는 번들거리면 흉하겠다 싶어서 요기만 붙였어요.

마찬가지로 클릭 바에 있는 가로 기름때 (__;;; 는 액정 모니터의 프레임에 눌려서 난 자욱입니다. 대충 모니터 액정에 난 기름 때와 스킨에 난 기름 때의 원리를 이해하시겠쥬?

다음은 크랙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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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 팜레스트 부분에 손목을 얹고 쓰다보면 위의 제 맥북처럼 끝 부분에 一자로 금이 갑니다. 그러다가 저렇게 이쁘게(?) 부서지는데요. 오른 쪽은 부서진지 8~9개월 정도 되었고 왼쪽은 1~2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른 손은 마우스를 썼다 다시 키보드로 왔다 하느라고 자주 충격이 있어서 그랬나봐요.

뭐 그런데 마지막 사진에서 보셔도 아시다시피 마치 꼭 그렇게 디자인 한 것처럼 이쁘게 부서져서 별 신경 안 쓰고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른쪽 팜레스트 부분은 HDD, 왼쪽 팜레스트 부분은 배터리 쪽 - 물론 배터리 위에 기판이 있겠지만요 - 그냥 통풍 잘 되게 했다 생각하고 쓰고 있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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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이 제 손기름으로 인한 키보드 번들거림이지요. 이거 중고 구매하는 분들은 되게 꺼림칙해하던데 용산 중고 센터에 몇 번 노트북 넘겨 본 경험에 의하면 저건 업자들 구매 때 가격 흥정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안 됩니다. 뭐 자기들 기술이 있으니 알아서 지우고 새 것 같이 해서 팔겠지만 그 '인건비'가 들 텐데도 그냥 무시합니다. 원래 노트북 자판은 키스킨 안 쓰고 조금만 있어도 저리 되니까 중고라면 당연한 건지도 후돌돌.

뭐 거슬리는 분들은 키스킨 사서 쓰셔도 되고 아니면 저것도 기름 때 지우는 걸로 지워지지 않을까용? - 사실 이 부분은 모르겠음, 행여나 자판의 글이 지워질까봐 덜덜덜 -

각설하고 자판의 인쇄 상태는 아주 깨끗합니다. 뭐 지워진 것도 없고. 번들거리기만 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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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판은 이렇습니다. 생활기스 투성이지만 '못' 같은 걸로 심하게 쫙~ 긁히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어용 -0- 암튼 수건 같은 걸로 싹싹 닦아 주면 다시 고르게 됩니당. 뭐 평상시 모습을 그대로 찍으려는 속셈이었으니 그리 보시면 될겁니다. 물론 사과 아래쪽 - 사진 상에서는 사과를 중심으로 좌상단 - 에 있는 검정 얼룩 같은 것은 손지문... 후돌돌...

다음은 네 귀퉁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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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귀퉁이는 아시다시피 시중에 나온 그 어떤 스킨을 붙여도 커버할 수 없습니다. 라운드 형태니까요. 그러다 보니 노트북을 펴고 닫고, 파우치나 가방에 넣고 꺼내고 하면서 외판 코팅이 아예 벗겨져 번들 거리는 생활 기스입니다.

다음은 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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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부 나사와 배터리 사이에 있는 기스는 예전에 노트북 놓는 자리에 작은 - 눈꼽만한 ㅠㅠ - 돌멩이가 있어서 그게 으스러지면서 생긴 기스구요, 하판 잔기스는 대부분이 놓는 탁자에 놓인 이물질로 인해서 생겨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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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을 비롯한 확장 슬롯 꼽는 부분에도 뭐 무리해서 나타난 건 없구요.

이 정도면 단점으로 잡힐 건 다 보여드린 것 같네요.

잘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세무~

Posted by 함장

2008/05/01 15:28 2008/05/0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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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미드) 보신 분? - 근황

베넷 닮은 함장

어떻습니까? 베넷 좀 닮았나효?

2주 전까지 3년 동안 해오던 '야간' 일을 끝내고 이제 '정상인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회사도 이사하고, 업무 인계와 함께 정신없던 2주를 보내고 나니 살 것 같네요.

이제 학교 생활 말고는 Side job으로 기획한 소프트웨어 런칭과 함께 사이트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Front-end 기획과 함께 Back-end까지 하느라 머리가 빠개질 지경입니다만 그래도 '잠'은 제 때 잘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랄까요?

쓰고 있는 맥북이 이제 겨우 2년 채워가고 있는데 맥북 프로로 가야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달고 사는 게 노트북이다보니 아무래도 한 차례 업을 하긴 해야 할 것 같네요.

더불어 지금 있는 티스토리를 떠나는 걸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회사 홈페이지 업그레이드 하면서 텍스트큐브 끼워 넣었는데 너무 좋더군요. 덩달아 글 써보고픈 욕망이 불끈불끈

트래픽이나 용량 문제로 티스토리를 써왔는데 이젠 서버호스팅 비용도 많이 싸진 편이니 이전을 고려해야겠어요. 그나저나 예전 글에 코멘트 들이 죄다 제 이름으로 달린 부분은 DB가 꼬여서 이미 덮어쓰여진 상황인데 저거 좀 어떻게 수정 못 할까 하는 아쉬움이 ㅡ.ㅡ

각설하고.

뭐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히로 닮은 함장

어떻습니까? 이건 히로 나카무라 닮지 않았나효?

후다닥~

Posted by 함장

2008/04/07 00:14 2008/04/0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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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반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날들에 대한 회상이 문득문득 밤을 비껴 오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더불어 이를 ‘고백’할 수 있는 점 또한 인간이 누리는 축복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외칠 수 없음이 인간에게는 결국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죽음이 닿아 있음을 일깨우며, 이로 인해 느끼는 고백의 욕망은 살아온 날들의 후회가 아닌, 인지부조화의 간극을 줄이고, 자신이 살아온 날에 대한 합리화를 위함이다.

루소의 ‘참회록’이 명작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에서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 어려우며, 솔직하다는 것의 정의 또한 모호하다. 자신이 믿고 싶은 바만 믿으며, 그 많고 많은 이해관계의 폭을 좁히기 위해 무던히 사고작용을 펼쳐야 하는 인간의 고뇌란,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이라는 거룩한 미명 아래 한낱 자기 만족을 위해 뇌까리는 그 무엇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가치야 말로 인간이 가져야 할 고귀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 글이 명작으로 남은 것이리라.

자본주의라는 것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루소는 분명 현대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언정, ‘경제력’의 위협이 늘 ‘공포’로 다가오는 사람이었다. 유사이래 언제나 신권은 권력을 가졌고, 권력은 금권을 가졌으며, 금권은 신권을 능히 농락할 수 있는 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신권은 만들어졌고, 권력은 자연스레 생겼으며, 금권은 결국 ‘노력’을 통해 얻어낼 수 있었으니, 자본주의는 곧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 몸부림 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금권을 허락하는 길이었다.

루소에게 자유란 권력이었다. 경제력이 없으면 육체가 자유로울 수 없었고, 주변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사유에 대한 자유’가 위협 받았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과 다른 ‘자본’을 가지고 타인의 의지로 태어나 자의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우리에게 ‘모든 이에게 자유와 평등을!’이라는 구호는 그저 금칠이 된, 만져볼 수 없는 타구(타액을 뱉는 그릇)와도 같다.

인간은 ‘합리적이고자’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합리적이지 않다. 오직 경제적인 판단만으로 미래를 결정해야 할 때도 있으며, 자신이 바라는 가치에 대한 열망으로 타인의 합리적 이성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단을 할 때도 있다. 루소의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삶 속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루소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그렇다. 나 또한 그렇다.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내 삶의 길을 바꿔야 하는 기로에 놓인 것이 몇 번이나 되었지만, 그 때 그 때 나의 결정은 매번 내가 꼭 원하는 길도 아니었고 반드시 합리적인 길 또한 아니었다. 주변 상황의 ‘위협’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기도 했고, 때로는 누가 봐도 가장 합리적인 길을 외면하고 딱 잘라 내 고집대로 - 혹은 아집일 수도 있지만 - 내 가고픈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정’이 반복될수록 어떤 ‘일관된’ 결정을 내리도록 학습되고, 나 스스로도 나에게 그런 ‘철칙’을 적용시켜가며 하나의 가치관을 성립한다는 거다. 누가 봐도 ‘자본’에 휘둘리는 결정일수록 나 스스로의 존재와 모순되는 결정이 허다하다. 조금 더 나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과 조금 더 ‘경제적 피해’를 덜 보기 위해 선택해야하는 상황은 그 절대량은 같을 수 있을 지언정, 목표가 다른 만큼 결단에 필요한 목적의식 또한 달라진다.

어떤 결정이든 그 책임은 결국 결정에 조언을 한 사람이나, 그 주변상황이 책임을 질 수 없이, 고스란히 결정자에게 전해진다. 그러므로 결정자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은 이상 언제나 결정에 후회를 남기거나, 결정으로 인해 닥쳐오는 시련 - 또는 행복 - 이 힘겨울 수 있다.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진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회고’를 하고 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한 인간이 선택의 기로에서 내린 결정은 주어진 ‘환경’에서도 결국 ‘살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결국 인간이 가지는 가치는 노력한 댓가로 얻는 ‘자본’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권력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일관된 합리적 결정을 적용할 수 있는,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걸어야하는 길이기도 하다.

Posted by 함장

2007/11/20 10:26 2007/11/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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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자원관리 '비영리단체의 경영' 요약 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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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벌써 수 십편의 에세이를 남겨왔듯이,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무수한 감정들을 글로 남기는 것은 분명 내 삶에 대한 태도를 타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삶에 있어 본질적으로 하나의 결단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이해관계와 그 속에 숨겨진 진정성, 의의, 명분 따위를 논리적으로, 감성적으로 설득시키기위해 나 자신을 타자화하고, 수많은 질문과 해답을 던지며 고뇌하는 모습이 글에 고스란히 남을 경우 뿌듯한 수필이 되는 거다.

사람은 늘 세월이 흐를수록 보수화된다. 내가 원치 않아도 어느 새 생각은 굳고, 감수성은 더뎌지며, 심드렁한 이야기로 삶의 편린을 채워나갈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타파하고 버텨내기 위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에 익숙할 수 없는 감정을 포용력으로 대처하려 하고, 관용의 자세라는 미명하에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수필의 소재가 일상다반사 되어버린 우리네의 보수적 모습에 대한 냉소나 혐오였다면, 장영희 교수의 소재는 어느 새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보수화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의 눈을 통해 깨어나가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소아마비를 딛고 일어서 주변의 차별섞인 시선에도 꿋꿋이 일어나 싸워온 전사 같은 모습이 글 속에 녹아 있음에도,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는 삶의 진행과 그 사이 사이 자신과 타인이 느낀 하나의 ‘정체성’에 대한 괴리감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아, 결국 자신이 취하는 태도에 합리적인 명분을 얹는 이야기들로 채워진 이야기들은 내 삶의 그것과 무척 닮아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갖고 있고, 이에 입각해서 자신의 행동을 구체화하고 논리적으로 그 행동에 대해 언제든 ‘변명’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버릇이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유따위 상관없이 ‘그냥‘이라는 한 마디로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 이해를 거부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소통을 통해 인간으로서 공존한다는 기본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저마다 그런 ‘변명거리‘를 준비하며 타인을 대한다.

이는 곧 신념과 연결되어 자신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방향성을 긋기도 한다. 장영희 교수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이 ‘변명‘들은 결국 자신이 스무살의 감성에서 ‘옳다고 믿어온’ 신념들이 미처 자신이 깨닫지도 못한 시간 사이에 ‘보수화‘되고, 잊혀져가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깨달음을 일상 속에서 발견하며 즐거워하는 내용이다. 처음에 그 마음을 잊지 않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통해 자신이 ‘잊었던 신념’을 환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깨어있는 것이리라.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도, 여전히 자신의 직업인 교수직을 잃을까 두려워해야하고, 하루 5분 샤워를 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쫓겨 살면서도 주변 인물의 지나치는 말 하나에서 자신이 ‘잊고 있던’ 가치를 되새기는 모습. 그것이야 말로 정말 ‘깨어있는 지성인‘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아닐까?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마음먹은 사람이 세파에 꺾이고 찌들어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감성을, 지성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살아가는 사람‘이 아름답기 위해, 삶을 대하는 태도. 그건 분명 생각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Posted by 함장

2007/11/05 09:44 2007/11/0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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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Inc.와 포드주의(Fordism)

올해 7월 Apple Inc.는 iPhone을 내어 놓으면서 정직원과 1년 이상된 파트타임 직원에게 이를 선물했다. 근대에 들어서 한 회사의 '생산물'이 그것의 생산에 개입한 노동자가 아무런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소유'하게되는, 조금 혁신적인 사건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이는 처음이 아니다. Apple Inc.는 2005년도에도 iPod shuffle을 전 직원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고려해보면 실상은 이와 다르다. 사실 iPhone이든 iPod shuffle이든 분명히 각인된 정보로는 디자인은 캘리포니아의 Apple Inc.에서, 제조 자체는 중국에서 이루어졌고, 중국의 하청업체 노동자는 iPhone을 받지 못하며, 물론 iPhone의 부품인 칩셋을 제공한 소니와 삼성 등등의 기업 노동자도 iPhone을 받을 수 없다.

더군다나 경영관련 서적 좀 넘겨본 사람들은 1만7천여명이 넘는 Apple Inc. 직원 전원이 iPhone을 갖게 되어 이로 인해 생겨나는 부가적인 요소들에 대해 여러 항목들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시대다.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토 단위면적당 생산량의 경제성이 양모를 생산하는 목초지 단위면적당 생산량의 경제성보다 떨어지면서, 농노는 '예속'관계에 있으면서 생산수단이던 토지를 버리고, '살기 위해' 도시를 찾아 공장으로 들어갔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 매우 잘 묘사해둔 '분업'은 결국 이렇게 공장을 찾아 들어간 노동자들이 자기 힘으로 만든 '생산품'에서조차 '소외'되게 만든다. 대장장이가 철을 녹여 못을 만들 줄 알아 이를 소유하고 거래하던 시대를 지나 대장장이 여럿이서 쇠를 녹이고, 못의 머리를 만들고, 몸통을 만들고, 이를 다시 결합하는 작업을 나누어서 하는 시대도 지나 아예 이 생산품을 소유는 커녕 대리로 '돈'을 받아가며 만들어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생산 수단으로부터 '타의로 인해 자유롭게 된' 노동자, 자기 노동으로 생산품을 만들어도 그게 '내 것'이 안 되는 노동자.

나는 Apple Inc.의 사건을 그 괴리감의 중간 쯤 놓인 혁신적인 사건이라 보는 거다.
생산에 관련된 모든 노동자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제조사'에 있으면서 '제조품'을 가질 수 있고, 잉여 생산품을 '내다 파는' 그런 원시적인 개념으로 말이다.



Fordism이라는 것이 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포드주의라 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경제 철학 중 하나인 이 사상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Ford Motor Company의 창설자인 Ford가 생각해 낸 것이다.

세계 경제 공황의 파급으로 인해 Ford Motor Company는 생산된 차량의 재고만 쌓이고 팔리질 않았다. 이로 인해 Ford가 내어 놓은 정책은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는 방안이었다. 경기가 경색되어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으면 결국 생산품이 팔리지 않아 생산도 줄어들고 전체 부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심한 정책이었다.

물론 모든 노동자가 임금이 오른다고 Ford 자동차를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Ford Motor Company의 노동자는 오른 임금으로 인해 어느 정도 소비의 여유가 가능했고, 이로 인해 주변 경기의 경색도 완화시켰다.



대한민국은 재미난 나라이다. 대학생들 대다수가 자신은 '진취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경쟁사회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는 듯 하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해 보면 그런 태도는 상이하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일본은 결국 근래에 인력이 모자라서, 대학 4학년생들은 이미 취업이 대부분 결정되었고 취업설명회도 3학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취업 희망 직장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회사가 아니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미는' 온화한 직장 분위기를 선호한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복지부동으로 편안히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의미한다. - 일본에서는 법령으로 정년에 대해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얘기하는 복지 부동은 우리 네의 공무원 인식과 비슷한 이야기로 인식하면 된다 -

차라리 일본 청년의 다수가 더 자기 정체성에 충실하다. 대한민국 청년 다수는 고용 불안에 대해 하나의 정체성이 두 가지 대응을 한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경쟁하면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호하는 직장은 철밥통인 공무원'이 되어버리는 웃긴 상황이 오는 거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편의점 알바까지도 사장님 마인드로 경영에 충실하다.



대한민국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 평균은 일본보다 꽤 높다. 이는 정년 보장이 되지 않는 우리나라 현행 법령과 보장이 되는 일본의 차이로 인해 노조가 얻어낸 결과다. 대기업 취업이 희망인 한 경영대 학생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임금이 높은 이유는 귀족 노조 때문이죠"

이게 바로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의 괴리이며, 노동자 따위 안중에도 없게 만드는 언론과 사회 풍토가 만들어내는 비극이다.



'돈'이란 건 돌고 돌아야 전체의 부가 증가한다.

억울하게 '귀족 노조'라 불리는 노동자도 임금을 받으며 이 임금에서 국가에서 요구하는 세금으로 '원천징수'를 당한다. 차라리 온갖 비리와 탈세로 얼룩진 대한민국 대기업의 타락한 모습보다 깨끗하다.

물론 노조도 이권으로 인해 타락할 수 있으며, 노동자도 연말정산에 종교단체에 기부하지도 않은 돈을 기부했다며 익세를 한다.

어쩌면 이마저도 사장님 마인드에 충실한 노동자들이 넘치는 나라여서인지도 모른다.
타인이 나보다 소득이 많아서 행복한 세상이라면 문제가 있다.
그러나 타인이 나보다 소득이 많아서 더 많은 기회와 권력을 가지게 되는 사회라면 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다.

Posted by 함장

2007/10/30 10:43 2007/10/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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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는 지금

1. 난 요 근래 더욱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혐오하게 되었다. 앞의 '자유'를 통해 '사유재산'의 보호를 자유로 부르짖고, 거기에 붙여 누진세의 '자유 침해'까지 역설하는 언론사상사 교수의 '자유찬가'는 한 귀로 흘려들으려 했건만. 도대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는데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며 '자본이 굴러가는 논리'에 대해 애써 외면하려는 몰지성적인 태도는 분노를 삼기에 충분했다.

민주주의 정치 철학과 자본주의라는 경제 철학이 부대끼는 삶에 긍정하지만,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 - 그것도 수정 자본주의가 아닌 순수 자본주의 - 를 찬미하는 이런 개념을 까부술 틈조차 주지 않는 권위주의에 경멸의 눈초리를 보낸다.

인간의 본성이 결국 자본주의로 흐른다는 이야기를 내뱉는 한 지식인 - 이라고 자처하는 - 이 내뱉는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라던가 로크의 이야기들이 정말 '몰지각'으로 다가오는 건 내가 저 지적으로 아리따운 교수에게 무식하다고 느끼기 때문인가 내가 무식하기 때문인가? 후자였으면 참으로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분노가 표출되진 않을 테니.

인간의 본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철학가 이름만 구워 삶으며 이야기하는 교수가 로크의 '백지화' 얘기를 꺼내며 386세대 - 혹은 그 이후의 한총련까지 - 가 '불온서적'만 읽어서 젊은 나이에 적화사상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에 치가 떨리더라. 그러면서 지금 자신이 내뱉고 있는 세계의 모습에 대한 단정적 이야기가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이건 아니건 간에 마찬가지로 한 쪽에 치우쳐 '자본의 무서움'을 쉬이 넘겨버리는 태도는 내 손에 짱돌을 들고 칠판을 까부수고픈 욕망을 일게 한다.

씨바. 헤겔이 무덤에서 비웃는다.



2. 체육관에서 땀 좀 빼고 나와 맥도날드로 가는 길에 화정역 광장에서 전국 노점상 연합회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다. 풍물패가 와서 북이며 장구며 신명을 떨쳐도 지나가는 사람에겐 그저 시끄러운 소음이며, '우리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함께' 들어주기엔 저마다 바쁜 일상이다.

철거민 연합회에서도 나와 생존권과 관련해 연대하는 모습 속에서 갑자기 밤마다 홍대 거리를 누비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들 중에 그 홍대 거리 노점상도 있을까?

이화여대 앞의 서대문 노점상 연합의 2002년 투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돈을 가진 사람들에겐 '권리금'도 없고, 점포세도 없는 노점상이 아니꼬울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의 '불법'을, 법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대통령을 뽑아 없애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겠다.

씨바. 저 냥반들 세금 거두는 거 보다 재벌들 세금이나 잘 받는 정부가 낫지 아니한가?



3. 지난 주 100분 토론을 다시보기 했다. 나와 함께 '경희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동명이인께서 나와주셨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봐주었다. - 당일 내게 100분 토론 나가냐고 문자주신 여러분, 제 이름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 - 물론 그 분은 교수. 나야 수업을 들을 기회도 없지만 - 국제경영학부는 수원 캠퍼스 - 뭐 권가가 까대기는 잘 한다.

100분 토론 내내 무서웠던 것은 저런 무식한 인간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는가란 의문이었고, 결국 우리네 수준이란 이런 거란 허망함에 치를 떨었다.

천민 자본주의. 그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위대한 사명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더 내 나라를 경멸하기로 했다.

증오가 느는 만큼, 내 나라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속에 숨어 있는 사람답게 사는 법을 훨씬 빨리 터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덩달아 커진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Posted by 함장

2007/10/16 16:07 2007/10/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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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 준비를 해야할 때

사실 글이 쓰기 어려워 진 것은 맥을 쓰면서 부터예요

사파리에서 오류가 하도 많이 나니 도무지 글을 쓰기 귀찮아진 거죠

아직도 사파리에서는 파일 업로드도 하나씩만 되죠.

맥 환경의 편의를 위해서 거래 은행까지 바꿀까 고민할 정도로 맥이 편합니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티스토리를 떠나기로 (__;;;

너무 뜬금 없쥬? 퀠퀠

각설하고, 뭐 바로 가진 않고 연말까지 예전 글을 죄다 수정해나가면서 지울 거 지우고 그렇게 가야겠습니다. 일단 용량이 너무 많이 차지하는 것이 있어서요.

그리고 저작권 때문에 닫아둔 음악 파일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좀 더 새로운 방향으로 고민해야겠어요.

그리고 미투데이 글의 블로그 배달을 닫았습니다.

이전에 달린 미투데이 글도 지웠죠. 코멘트 달아주신 분들께 죄송하지만, 서버 지연 시간으로 배달 안 된 글 들이 몇 개 보이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통일성을 위해 그냥 빼버리기로 했어요.

미투데이와 블로그를 아주 독립적으로 놓고 따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겁니다.

물론 서로를 연관시켜주는 것은 링크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인 셈이죠.

각설하고.

뭐 요즘 널럴합니다. 벌써 다시 시작한 복싱을 반년째 하고 있고, 일도 쉬엄쉬엄 하면서 와우도 재미나게 즐기고, 분명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있긴 합니다.

다만.

쫌 외롭네효? ㅋㅋㅋ

Posted by 함장

2007/10/04 21:42 2007/10/0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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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풍경

라페스타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고, 같이 보기로 한 사람이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커피 하나 사들고, 정발산 역 공원의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벧엘교회의 커다란 십자가가 우리를 굽어 살피고 있었고,
공원 한 가운데에는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 '엘리제를 위하여'와 함께 시속 20km의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미니 자동차가 모여 있었다.

그러나 공원의 전체를 활주하는 것은 시속 30km를 넘는 속도로 움직이는 미니 모터싸이클이었고, 남녀노소 누구나 그렇게 '폭주'를 뛰고 있었다.

난 그 번잡함을 지나, 공원 중앙을 차지한 채 '번쩍거리며' 세련된 500원짜리 미니 자동차가 아닌, 너무도 오래 되어 이리저리 사고의 흔적들과 몇 번의 페인트 덧칠을 했을지 상상조차 안 가는 외형을 지닌, 오래된 500원짜리 미니 자동차가 모여 있는 곳의 벤치를 찾았다.

노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그 미니 자동차는 가지런히 정렬된 채, 아이들을 기다렸다.

남편은 고장난 한 대의 배터리를 빼내고 배선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고,
부인은 하염없이 500원을 넣어가며 아이들의 시선을 뺏으려 노력했다.

영악한 아이들은 몰래 몰래 다가와 혹시나 500원짜리가 튀어 나오지 않을까 반환 레버를 만지작 거리다가 눈이 마주치면 도망가고,
아이를 데리고 지나치는 부모들은 좀 더 '나은' 차를 태우기 위해 다른 곳으로 비껴갔다.



노부부의 벤치에는 출출함을 달래기 위한 미숫가루와 떡 몇 조각이 놓여 있었고,
남편은 자동차가 잘 안 고쳐지는지 짜증을 내며 성질을 부렸다.

부인은 구부정한 허리에 묶인 돈가방의 무게에 더욱 허리가 휘어 보였다.



좁은 나라.

이제 내 어린 날 주머니 100원이 없어 못 타던 미니 자동차는
폼나게 탈 수 있는 미니 모터싸이클에게 자리를 내주었건만
왜 아직도 저 노인들은 얼음조차 다 녹아버린 미숫가루를 먹어가며, 이 땡볕에 돈을 벌어야 하는가.



뒤에선 홈에버 파업으로 인해 전경들이 모여 앉아 식판에 쌀밥을 얹어 먹고

연인들은 벤치에 누워 사랑을 나눈다.

아! 대한민국!



그 노부부의 오래된 자동차에,
그 노부부의 오래되었을 짜증섞인 실랑이에,
목이 메어 눈물을 훔쳤다.

Posted by 함장

2007/08/24 03:08 2007/08/2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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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말 우려했습니다...

호스팅 업체!!! 쀍!!!!!!!

티스토리로 옮긴 이유는 무제한 용량은 필요없고, 무제한 트래픽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드!디!어!....

텍스트큐브가 나와버렸... orz

1년에 10만원 해도 좋으니

무제한 트래픽 하면서 '안 망하고' 꽤 '서비스 친절한' 호스팅 업체는 없나효 orz

Posted by 함장

2007/08/16 19:15 2007/08/1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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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싫어한다는 거

난 블로그를 하면서 꽤 많은(?) 敵을 만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를 하고, 사실 '둥글게' 살아가는 게 가장 현명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 거부감은 없다. 그러나 내 어린 치기가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믿음은 분명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 경계 대상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축복 중 하나인 '다양성'이 있다. 이를 위협하는 '한나라당'과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잣대는 명확하다. 그들은 나의 敵이다.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이유는 별 거 아니다. 나의 인문학적 소양에 의해 내가 이 나라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기 위해, 살아가면서 투쟁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하고, 이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저런 사람들의 '존재'를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용인하면 위험하다. 다양성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건 모순 아닌가!



물론 세상에는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파시즘을 꿈꾸고, 엘리트주의에 허덕이며, 자본주의 시스템과 약육강식이 진정한 'Life'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물론 이들도 나의 적이다. 그렇기에 내 적은 너무도 많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고. 그렇다고 이상을 포기하고 살아간다면 '사람다움'을 포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그게 사람이라는 자조섞인 신음 또한 유치하다. 포기가 사람의 길이면 인류는 진보하지 못 했다 -



이런 내 얘기에 '그래 너만 잘 났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다행이다. 아직도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미련이라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추구하지 못하는 이상에 대한 '아쉬움'. 그런 게 살아 있다면 정말 희망이 있다.



난 가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 성향 - 물론 그 중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들끓는 쪽 - 에 의아할 때가 많은데, 겉으로는 아주 천민 자본주의에 쩔어 있으면서도, 영화라던가 그 외의 어떤 '사람다움'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에 미친듯이 열광한다는 거다.

이게 바로 자기 정체성에 대한 기만 아니던가?



가슴으로 뜨겁게 원하는 것을, 머리로 차갑게 생각해서 세상에 풀어 놓고,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현실에서 투쟁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그런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아니꼬와 하며 - 왜냐하면 자기도 마음 속에서는 그게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량한 그 '자신보다 사람다운 투쟁을 잘 하는 사람에 대한 불인정'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드러내기 싫으니까 - 왜곡하는 처사는 이젠 구역질이 나다 못 해 안쓰럽다.

그러나 안쓰러워 해서는 안 된다. 저들과는 끝까지 투쟁하고 설득해야 한다. 물론 개무시도 좋은 방법이다. 소모적인 논쟁은 하등 도움 될 것이 없으니까.



어쨌거나 몇 년의 글을 적어나가면서.

그렇게 수 많은 적을 만들고, 그들의 뒷담화를 지인들을 통해 들으면서도 후회는 없었다.

당연히 내가 걸어가고픈 길이고, 받아야 할 신념의 댓가였으니까.

그리고 그 때마다 분명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에 힘이 됐으니까.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고, 나 스스로도 늘 '변해가야'한다고 내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다.

언제든 경직될 수 있는 사고를 바꾸기 위해 변해야 하고, 언제든 편협해질 수 있는 내 시각을 더 나은 다양성의 인정을 위해 깨뜨리려고 무던히도 노력해야 하니, 정체할 시간 없이 계속 변해나가야 한다.

물론 이는 내 적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들도 '사람'이고. 그들도 변해갈 수 있다.



어떤 종교의 가르침이던가?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거?

약간의 시각은 다르지만, 난 사람을 끝까지 미워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은 변할 수 있다'라는 내 철칙으로 인해서, 죽을 때까지 미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밉다는 표현보다는 '싫다'라는 표현이 훨씬 의미에 충실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지 눈에 고까운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난 내 '적'들을 싫어한다.



이 또한 반대로. 내 적들은 내가 이 블로그에 쏟아놓은 글로 인해 나를 '싫어할 수 있다' 그리고 개무시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귀결이다.



난 새로이 들은 나에 대한 적대감을 무덤덤히 받아들이다가,

그 적대감이 나와 관계된 모임까지 퍼져가는 것을 듣고 기분이 언짢아졌다가,

지인과 관련있는 일이라 기분이 더러워졌다가,

결국은 이게 다 내 業이라 생각하며 다시금 차분해졌다.



사람을 최대한 신중하게 사귀어 쉽게 알아두지 않는데.

그래서 더욱 인간관계가 협소한데.

꽤 성가신 관계로 거듭날까 매미소리와 더불어 약간의 짜증이 밀려온다.

Posted by 함장

2007/08/10 11:31 2007/08/1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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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코어 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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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주. 그러니까 7월 6일에 회사에서 강화도로 MT를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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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2년 유저의 블리자드 T셔츠!!!


발 야구를 하느라, 줄도 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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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개발!


족구도 했죠.

문제는 그 다음 날 부터였어요.

지난 주에 회사 입찰 PT 두 군데가 있어서, MT에서 돌아오자마자 회사에 들어가 일요일 새벽까지 Keynote로 PT 만들고, 집에 들어가 기절한 후에 다시 월요일 아침에 나와 PT하고 - 아시다시피 전 주로 저녁에 일하죠 -....

좀 여유가 생기는가 싶더니 바로 금요일 PT는 분량이....orz

겨우 내용 압축해서 구겨 넣다시피 만들어, 결국 PT 완료.

수요일부터 연이은 날밤 새기에 피로감이 엄습했지요.

그러나 3주 전부터 계획된 삼청동 와인파티!!

뭐 제가 Winer도 아니고, 뭐 맛을 알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좋은 사람들 모이는 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해야죠.

그런데 제가 와인 파티 간다니까 다들 오해를.

그것도 그렇게 날 밤 새면서 고생고생 하고도 필사적으로 가겠다는 제 모습을 보면서 회사 사람들 전부 '여자들 많이 오는 모임 아냐?'라는 의혹에 휩싸인 눈초리를!!!

그러나 여기 영상을 보시면, 오해를 풀 수 있습니다!!!

전부 남자....orz



너무 즐거운 모임이었습니다. 정말 정신 없이 한 주를 보내고, 이틀 연속 밤을 지새고 찾아간 보람이 있었지요.

함께한 분들 저마다 개성으로 똘똘 뭉친 분들이라 너무 뜻 있던.

그러나 가장 어린 주제에 피로함을 핑계로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더 있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더군요.

어쨌든.

요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빨리 블로그 스킨 바꿔야 하는데 도통 시간이 나야 말이죠 -0-

Posted by 함장

2007/07/17 01:40 2007/07/17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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